우리 사회의 암적 요소를 하나 꼽으라면 단연 지적 무능력이다. 사교육비가 가계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교육열이 끓어있고, 청년 중 대학생 비율이 이렇게나 높은데 웬 지적 무능력이냐고? 당치 않은 소리. 우리는 부모의 공부 강요가 교육열이라 믿고 있고 국가 발전의 동력이었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교육과 거리가 한참 멀다. 그것은 ‘고시열’ 내지는 ‘서울대열’이라고 부름직한 기형적 요소일 뿐이다.
기형적 교육은 기형적 경제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제강점의 잔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고, 때문에 대부분의 자본은 일제를 바탕으로 돈을 축적한 기득권층에 집중되었다. 정경유착을 거치며 현상은 더욱 심화되었으며, 이러한 구조 위에서는 착실히 일해서 성공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터다. 전후 국내의 유일한 성공루트는 고시를 파는 것이었다는 얘기다. 고시에 붙으려면 마땅히 서울대에 진학해야하고, 모두가 성공하려면 서울대에 가야만 하는 상황. 그러니 지금까지 이어져온 교육열은 실은 고시열이었던 것이다.
이 땅에서의 교육은 성공의 수단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서태지가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다고 외친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도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를 곱게 간직하고 있다. ‘국영수’가 철수나 영희만큼이나 친근한 이름인 것도 교육의 부재-고시의 산실인 이 나라의 교육현장 덕분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적 무능력이다. 우리 세대의 학생들은 수능 문제의 답을 골라내는 능력은 있을지언정 6번 선택지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없다. 문철사학을 1번에서 5번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로 배운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법이 없다. 그러다보니 나이를 좀 먹어도 제대로 성장을 못한다. 포털 사이트 뉴스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라.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지금의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철학 교육이 가장 시급하다. 학생들에게 윤리 교과서를 외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철학자의 마인드를 심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공부할’ 준비가 된다. 하지만 지금 현실은 어떠한가? 철학은 지들끼리만 알아먹는 어려운 문법의 세계이거나, 성적이 조금 못 되지만 학교 이름 보고 들어간 철학과에서 배우는 학문이라고 여기고 있지 않은가. '왜'라는 질문 없이 대답만을 달달 외워온 학생들은 자신이 철학과는 거리가 멀다고 믿는다. 이러한 현실이 가장 단적인 사회의 지적 무능력이다. 모든 지적활동의 근본이 되는 철학을 제쳐놓고 지성을 논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교육을 비롯한 전반적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철학 교육이 선행되어야 고쳐질 수 있다. 철학적인 근본 자세가 되어야 등수 매기기가 왜 부당한 것인지, 강자의 논리가 왜 정의가 될 수 없는지를 비롯해 민족주의, 자본주의 등의 허점을 짚어낼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의 암적 요소를 비판하는 목소리에 '좌빨'이니하는 허망한 힐난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얘기를 지인에게 했더니, 부모님 덕에 학교 잘 다니고 대학도 간 놈이 웬 패륜적 발언이냐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다면 부모님이 물려준 이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해서 자식들에게도 강요해야한다는 말인가. 흐흐흐. 정말, ‘흐흐흐’ 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사회의 암적 요소는 지적 무능력이다.
0. 들어가는 말
중등교육과정에서 역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교과서의 첫 장부터 거론된 두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19세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역사의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랑케(Leopold von Ranke, 1795~1886)와, 우리에겐 더 가까운 시대의 카(E.H. Carr, 1892~1982)는 모두 아래와 같은 질문에 답하려고 노력한 역사학자였다.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를 기록하는 역사가의 임무는 무엇이며, 그가 기록한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이 글은 카의 저작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역사의식에 대한 논의를 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그보다 100년 전에 같은 질문에 대답했던 랑케를 거쳐야만 하겠다.
-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ml:namespace prefix = o />-ml:namespace prefix = o />
1. 두 역사관 사이에서의 항해
우리는 역사를 배우면서, 좋건 싫건 간에, 종교, 정치, 권력에 대한 가치판단은 물론이고 온갖 선입견과 편견을 동시에 몸에 아로새긴다. 역사라는 근사한 음식을 먹어보려면, 과거의 사실이라는 재료뿐만 아니라 그 기저에 있는 정치적인 사상이나 교훈과 같은 조미료들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가 한국 근현대사를 배우는 동안 민족주의나 레드 콤플렉스가 유전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만약 역사라는 것이 정치와 권력과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수단으로 사용된 것이라면, 그것을 건전한 역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역사란 모름지기 교훈을 남겨야 한다는데, 그 교훈이 단지 당시 지배계급의 의식이 반영된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면, 진정한 교훈이 될 수 있을까?
역사가 일개의 정치적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우려한 랑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사실로서의 역사를 강조하며 “역사란 과거의 사실과 다름이 없어야 하며 사실만을 서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래는 그의 저서 『라틴 및 게르만 제 민족의 역사 1494~1514』의 서문에서 발췌한 것이다.
지금까지 역사에는 과거를 판단하거나 윤택한 미래를 위해 교훈을 제공해 주는 기능이 있었다. 이 책은 이러한 고상한 과업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이 진실로 어떠했는가를 보여주려고 할 뿐이다. … 나는 나의 자아를 소거해서 다만 사실로 하여금 말하게 하며 강대한 모든 힘을 눈앞에 나타나게 하려고 할 뿐이다.
랑케에 따르면 역사가의 임무란 자신의 모든 주관을 배제하고 단지 과거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다. 역사가는 선입견과 편견, 모든 이해관계를 벗어던지고 과거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이러한 역사의식은 굉장히 매력적이며 설득적이다.
하지만 과거라는 것은, 그리고 역사라는 것은 진실로 어떠했는지 밝힐 수 있는 대상일까? 역사라는 것은 역사가와 완전히 무관하게, 역사가의 마음 밖에 존재하는 실재일까? 콜링우드(Robin George Collingwood, 1889~1943)는 랑케의 역사의식이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는데, 그가 십년만 더 살아서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라쇼몽』을 감상했다면 아마 크게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우리에게 과거를 증언해주는 수많은 사료는 우리에게 객관적인 진실을 보여주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사료란 것은 승자의 기록에 지나지 않고, 객관적인 사료가 수없이 우리에게 제공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모두 모아 통틀어 ‘역사’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러한 식으로 작업하는 역사가는 말년을 정신병원에서 보내고 말 것이다.
더불어 콜링우드를 비롯한 랑케사학 비판자들은 ‘역사란 역사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가령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과거에 대한 사실(a fact about the past)’은 역사가에 의해 그 중요성이 부각되어 ‘역사상의 사실(a fact of history)’이 된 것이다. 반면에 여러분이 화요일 아침에 강의실에 앉아 김재현의 발표를 듣고 있다는 사실은 ‘역사’라고 볼 수 없다. 카이사르 이전에, 그리고 이후에 루비콘 강을 건넌 모든 사람들이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 것도 물론이다. 즉 과거의 사실 중에서 누군가는 그것을 선별해 역사로 만들어야 하며, 그것은 역사가만이 할 수 있는 임무라는 것이 랑케를 비판한 자들의 의견이다.
물론 역사가의 손을 거치지 않은 역사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더욱 따라가다 보면 랑케가 지녔던 것만큼이나 큰 문제에 봉착하고 만다. 결국 역사란 역사가가 만들어내는 창작물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과거의 사실 그 자체가 우리에게 존재할 수 없다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어떤 역사가의 주관일 뿐인가? 랑케처럼 객관적인 사실만을 주장하기란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역사가가 역사를 창조한다는 역사가 만능주의에 의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딜레마에 대해서 카는 이렇게 썼다.
과거에 무게중심을 두는 역사관과 현재에 무게중심을 두는 역사관 사이에서 어렵사리 항해하는 그런 사태에 놓이게 된 셈이다.
2.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
지금껏 카에 대해서 논하기 위해 상당 긴 길을 에둘러왔다. 하지만 미리 언급된 두 사관을 이해했다면 카의 사관은 허탈할 정도로 간단하기 때문에, 이것이 지체된 길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는 대립되는 두 사관이 화해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열었을 뿐이다. 즉 역사가와 과거의 사실은 둘 중 하나가 우월하지 않은 평등한 관계, 주고받는 관계에서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를 지속하고 있다는 것이 카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다. 역사는 고정된 채 스스로 존재할 수 없으며 역사가 역시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우리가 굳이 역사서를 읽는 이유는 과거의 사실을 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역사가가 부여한 역사적 중요성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한 가지 교훈과 의문을 동시에 얻는다. 그 교훈은 우리가 어떤 역사책을 집어들 때, 우리의 최초의 관심은 그 책에 포함되어 있는 사실들이 아니라 그 책을 쓴 역사가에 관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서의 내용을 받아들이기 전에 역사가가 수많은 과거의 사실 중에서 몇 가지를 선별해 역사로 옮긴 그의 기준을 먼저 탐구해야 한다. 여기서의 의문은 이렇다. 역사가가 중요성을 평가하는 그 기준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카는 사회에서 분리된 개인이란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추상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즉 모든 개인은 어떻게든 사회와 연결되어있고 그 사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역사가 역시, 그리고 그의 지식 역시 오로지 그만의 개인적인 소유물이 아니다. 역사가는 역사의 일부이며, 역사책을 쓰기 시작하기 이전에 이미 역사의 산물이다. 이를 토대로 우리는 앞서 얻은 교훈에 이렇게 덧붙일 수 있다. 역사를 연구하기에 앞서 역사가를 연구하라. 그리고 역사가를 연구하기에 앞서 그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을 연구하라. 역사가는 개인이면서 또한 역사와 사회의 산물이다. 또한 역사가가 연구하는 과거의 개인, 예컨대 나폴레옹과 같은 위인 역시 개인이기 이전에 당시 사회의 산물로서 그를 연구한다는 것은 그의 시대를 연구한다는 것을 말한다. 앞서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카의 명제를 보였는데, 이제 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어떤 과거에 대해 연구하는 역사가는 그 자체로 현재 사회의 산물이므로, 역사가가 과거와 대화를 한다기보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재의 사회와 과거의 사회가 대화를 하는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보자. 역사가는 사회의 영향을 받아 어떤 기준을 세우고, 과거의 사실 중에서 몇 가지를 선별해 역사로 승격시킨다. 그렇다면 한 사회가 역사가에게 요구하는 그 기준은 어떻게 설정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역사가가 역사를 쓰는 이유와, 역사적 객관성에 대한 훌륭한 대답이 될 수 있다. 인간은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사고한다. 로빈슨의 이야기에서 현실적인 것과 우연적인 것을 가르는 잣대는 ‘목적’이다. 그 목적에 기대어 역사가는 ‘왜’라는 물음에 답한다. 이것이 역사가가 역사를 연구하는 이유다.
객관적인 역사가라면 시대가 가진 목적에 맞추어 합당한 기준을 통해 사실에서 역사를 골라내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로빈슨의 사건 조사에서의 객관성은 정확한 사실들을 입수하는 것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 사실들 중에서 중요한 것과 무시할 것을 구별하는 것에 달려있다. 여기서 객관적으로 구별한다는 것은 우리가 직면한 목표에 의해 좌우된다. 예컨대 교통사고 사망자의 감소라는 목표와 연관된다면 로빈슨이 애연가라는 것은 무시할만한 사실이지만 거리가 어둡거나 음주운전에 대한 감각이 무딘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우리는 이러한 구분을 객관적이라고 말한다.
3. 진보란 무엇인가
다시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명제로 돌아가자. 역사가는 과거로부터 역사적 방향성을 찾아내어 미래를 변화시킨다. 새로운 미래는 새로운 목적에 따라 다시 새로운 과거를 만들어내고, 이 새로운 과거는 다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간다. 이러한 작용과정이 ‘끊임없는 대화의 요체’라고 할 수 있겠다. 카는 이렇게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진보의 과정으로 이해했다. 이 끊임없는 상호작용은 인류의 사회적 획득형질을 세대에서 세대로 전하며 끝없이 크게 만들며, 그것은 점차 나아지는 것을 의미하므로 ‘역사는 진보한다’는 것이 그의 궁극적인 주장이다. 결국 그는 역사의 진보를 주장을 하기 위해서 역사가 무엇인지 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우리에겐 진보에 대해서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카가 주장한 끊임없는 상호작용은 과연 진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그의 주장을 되씹어보면, 그는 단지 근대이성이 드러낸 부정적인 결과(서구의 몰락이나 세계대전과 같은)에 반하여 등장한 비관주의자들을 반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진보라는 말 자체는 카가 언급한 것처럼 역사 밖의 절대적 목표 없이 거듭되는 발전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사실에서도 당위가 이끌어진다는 억지 주장을 통해서, 현 상태를 낙관적으로-스스로 낙관주의자라고 말한 만큼- 바라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진보란 무엇인가? 일례로 우리가 인터넷에서 영화를 하나 다운받는다고 하자. 파일이 100% 받아질 때까지 전송은 계속된다. 우리는 13% 받아졌을 때보다 27% 받아졌을 때 더 나아갔다고 말하는데, 이는 전송이 100%에 더 많이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나아간다는 말에는 언제나 목적지라는 기준이 필요하다. 우리의 목적이 궁극적 자유일 때, 더 자유로운 사회가 더 진보된 사회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다. 그 목적이 자유이든, 평등이든, 헤겔의 절대정신이든 맑스의 계급철폐이든 간에 진보는 언제나 궁극적 지점을 향한다.
카의 결론은 과거로부터 방향을 찾아 미래의 그곳으로 나아가야한다는 말인데, 그 방향이 고정되지 않았다는 전제가 결론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현재는 과거보다 역사의 상호작용이 더 많이 일어난 곳이기 때문에 진보된 것이라는 주장이 부당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런 식의 진보는 결코 최종 목적지를 가질 수 없다. 우리는 아무래도 자유와 평등이 더 보장되는 사회를 진보되었다고 말하는데, 카의 진보는 상호작용을 통해 지금의 목표에 다가선다고 해도 나중에는 결국 다른 사회를 목표하게 될 뿐이다. 그는 ‘그래도 그것은 움직인다’고 했지만, 그의 논리 안에서 그것은 일련의 운동 내지 변화일 뿐이지 진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4. 역사는 진보하는가
진보가 어떤 목적지를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라 해도, 그것이 역사가 진보한다는 것을 설명하진 않는다. 진보를 믿지 않는 사람들, 카의 말을 빌리자면 비관론자들은 아주 간단한 예로 설명하기도 한다. 역사가 진보한다면, 히로시마의 20만 명은 진보의 희생양이라도 된단 말인가? 보이지 않는 계급에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자유로우며 계급은 철폐됐다고 믿는 근현대인이 전보다 나아진 것이라면 무엇이 더 나아졌단 말인가? 애초에 궁극적 도착점이란 것이 과연 존재할 수나 있는 것이며, 있다고 해도 그것을 누가 보증하는가? 진보를 부정하자면 니체의 영원회귀까지도 언급할 수 있겠지만, 대체로 ‘진보’란 근대인이 만든(특히 18세기 이후로 완전히 믿게 된) 추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진보란 기껏해야 상대적인 것인데, 자연에 대한 지배를 진보의 기준으로 세운 근대는 결국 핵을 만들고 말았으니 인류의 공생이라는 진보의 기준에서 보자면 근대는 퇴보했을 뿐이다.
그러나 사회가 진보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고집하면 극단적인 회의주의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카는 이러한 점을 가장 우려했고, 동시에 절대적 도착점을 상정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끊임없는 대화라는 역사의식을 구성했을 것이다. ‘그 먼 미래에 나타날 목적’이란 것은 사실이라기보다는 당위로 설정한 한 가닥의 희망이다. 그래서 그의 진보라는 개념은 아름답지만 막연하다. 차라리 역사란 진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기보다 역사는 진보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면 논리적 문제는 해결된다. 결국 역사가 진보한다고 주장하려면, 도착점을 먼저 설정해주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카에게는 아쉬운 얘기겠지만, 역사는 도착점을 가지고 진보한다. 이 주장을 펼치기 전에 피투된 인간은 어떻게든 기투하여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해주길 바란다(여러모로 의지할 곳을 마련해준 하이데거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그 기투의 목적은 단연 행복이라고 해야겠다. 그래서 역사의 최종 목적지는 궁극적 행복이며, 우리는 행복을 위해 자유와 평등을, 믿음과 사랑을 추구한다. 행복이 무어냐 묻는다면 최고선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변을 인용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을 추구하는 방법은 명확하다. 그것은 어떻게 해도 변치 않는 역사 진보의 기준점이다. 물론 그 행복을 독점하려는 시도를 포함해 크고 작은 오류에 빠져 역사적 참사를 낳는 경우도 있었고, 앞으로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그 때마다 깊게 반성해왔고 진보된 지성을 낳고 있다. 이 주장을 카보다도 더 낙관적이라며 비판할 수 있겠으나, 카로부터 재인용하자면, 그래도 그것은 움직인다.
나는 오늘 점심에 롯데리아 햄버거를 먹었다. 그것은 오로지 나의 취향과 의지에 기반을 둔 선택이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롯데리아 햄버거’라는 자본주의의 표상을 근거로, 나에겐 이미 선택권이 없었다고 단언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나는 크라제 버거를 먹지 못했다! 내가 롯데리아를 먹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권력 때문이고, 이 권력을 자본(이라는 헤게모니)이라고 규정한 그의 이름은 맑스다.
그러나 푸코는 맑스와 달리 저 제목에서 ‘점심’에 방점을 찍을 것이다. 왜 나는 점심시간에, 정확히 말해 ‘12시에서 1시 사이’에 무언가를 먹어야만 했는가? 그는 ‘권력이란 무엇’이라고 말하지 않고, 다만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여 그 한 시간 사이에 나로 하여금 밥을 먹게 만들었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삽시간에 자유를 박탈당한 나는 이렇게 변호하리라. ‘나는 점심메뉴를 마음대로 고를 뿐만 아니라,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고,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하며,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다.’ 그러면 푸코는 다시 묵묵히 권력의 계보학을 펼쳐 보이며 말 할 것이다. ‘그렇다, 너는 무언가 공부를 해야 하고, 직업을 가져야 하며, 정해진 곳에 살아야 한다.’ 그에게 권력이란 그렇게 작용해왔고, 더 견고하게 작용하고 있는 바로 그것일 뿐이다. ‘무엇’보다 ‘어떻게’가 더 중요한 계보학적 방법은 그렇게 ‘규율’과 ‘훈육된 나’를 설명한다.
말하기 쑥스럽지만 나는 군대에서 정확한 제식을 훈육 받은 몸이다. 그곳엔 틀린 걸음걸이와 심지어 틀린 시간이 존재한다. 예컨대 6시가 아닌 5시 55분은 틀린 기상시간이다. (거짓말이 아니다. 정말로 5분 일찍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다가 선임병에게 혼쭐난 적이 있다.) 그 병영의 담벼락에서 빠져나와 하루 빨리 자유를 과식하고 싶었고, 전역 날, 그렇게 될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1교시 수업에 맞춰 정해진 시간에 기상한다. 학교의 울타리에서 벗어나면 직장의 울타리 안에서 그러하리라. 비극적이게도 나는 그 안에서 ‘정상인’의 안도를 맛보리라.
나는 롯데리아 햄버거보다는 자유를 탐식하고 싶지만, 실은 거식증에 걸린 몸이다. 몸은 솔직한 법이라서, 자유를 바라보면서도 안도의 늪에서 발을 빼지 않는다. 물론 그것은 ‘늪’이기 때문에 빼기 힘든 부분도 있다. 그러나 하루 평균 84번 나를 촬영하는 CCTV가 감시라기보다 안도의 장치로 여겨지는 것은,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안정이 자유보다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내면화된 시스템은 나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아무리 보헤미안과 아나키즘을 입 밖에 꺼낸다 하더라도, 거식증에 걸린 몸이 유일하게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은 안도뿐이다. 가끔씩 반찬으로 나를 거식증에 빠뜨린 시스템을 욕하기도 하면서.
문제는 이렇다. 시스템은 나에게 끊임없는 고해성사를 요구한다. 푸코가 『감시와 처벌』의 끝머리에 인용한 재판의 경우처럼 그들은 나의 집을 물으며, 나의 직업을 조사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감시한다. 이것이 ‘심문’이 아니라 ‘고해성사’인 이유는 그것이 선사하는 면죄와 안도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한 자유를 쟁취하려면 이미 우리 안에서 공고히 자리 잡은 시스템을 부정해야 한다. 심문을 고해성사로 만든 자신을 먼저 소거해줘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자유란 스스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부정하여 내 안의 권력이 없는 아나키 상태를 만들어야 획득된다.
그런데 그렇게 얻게 될 자유를 다자이 오사무는 ‘부끄럽다’고 했다. 한번은 네이버에서 『인간실격』에 대한 네티즌 평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중 상당수가 ‘그저 치졸한 인생을 묘사한 이 따위 글도 문학이냐’는 내용이었다. 아찔한 장면이다. 소설 속 규율 안에서 요조는 ‘인간실격’이었고, 오사무 역시 덩달아서 이 세계의 비정상인이 되고 말았다. 시스템에서 벗어난 삶을 그리는, 시스템에서 벗어난 자. 나는 여기에서 권력에 대한 예술의 기능을 발견한다.
예술은 권력의 껍질을 벗겨내는 과도로 작용한다. 예술은 끊임없이 권력을 벗겨내어 은닉된 알맹이를 드러낸다. 그것의 발현은 언제나 아나키적이고, 아방가르드적이다. 예술은 언제나 세계와 마찰을 겪고, 그 마찰의 상처 속에서 새살을 돋운다.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해체할 때나 뒤샹이 변기를 떼어올 때, 워홀이 캠벨수프를 얹어놓을 때와 마찬가지로 오사무가 요조를 인각실격시키듯 카프카가 벌레로 변신할 때나 이상이 박제될 때, 박민규가 세상을 낯설게 할 때 우리는 규율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상 : 아니! 예술의 전부가 그 발생에 있어서 개개 '무정부'라는 내 논리가 뜻밖에도 예술에 대한 모독이 되오? 꾿 빠이.
코 : 예술이 무엇인지 묻지 말라. 예술에게 거기 그렇게 머물러 있으라고 요구하지도 말라. 이것이 예술의 도덕이다. 이것이 예술의 신분증명서의 원칙이다.

